자본의 논리에 매몰된 일회성 관광 정책… 지역의 고유성과 주민의 삶은 뒷전‘지속 가능한 공존’인가, ‘지속 불가능한 상품화’인가… 본질에 대한 질문 던져야
최근 전국의 수많은 지방자치단체가 '관광객 유치'와 '지역 활성화'라는 명목 아래 사활을 걸고 있다. 출렁다리, 케이블카, 인공섬, 그리고 대규모 위락시설까지. 다른 지역에서 성공했다는 모델이 있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복사해 붙여넣듯 대규모 개발 사업에 뛰어든다. 그러나 화려한 조감도와 수십만 명의 방문객 수라는 수치 뒤편에서, 정작 그 지역을 지탱해 온 고유한 역사와 생태, 그리고 주민들의 평온한 삶의 터전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무분별한 관광 드라이브를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당장 눈앞의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지역이 가진 가장 소중한 알맹이와 자존심마저 내던지는 모습이, 마치 자본의 논리에 영혼을 파는 듯한 서글픈 거부감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본질을 잃어버린 ‘박제된 관광’
언제부터인가 지자체의 관광 정책에서 '사람'과 '생태'는 사라지고 '상품'만 남았다. 지역의 역사적 맥락이나 자연환경과의 조화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진행되는 일회성 개발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는다. 수백 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습지와 자연 생태계는 포크레인 아래 파헤쳐지고, 그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위적인 구조물과 상업 시설뿐이다.
그 결과 지역은 고유의 색깔을 잃고 평범한 유원지로 전락한다. 관광객이 잠시 머물다 쓰레기만 남기고 떠나는 '일회성 소비 공간'이 되는 순간, 지역의 진짜 주인인 주민들의 삶의 질은 황폐해진다. 정작 보호받아야 할 멸종위기종의 서식지는 파괴되고, 오랜 시간 축적된 공동체의 문화적 자산은 자본의 화려한 겉치레 속에 박제되어 버린다.
(천연 바위에 잔도 설치한 모습, 글씨까지 새겨 박았다고 한다, 영혼이 긁혔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관광인가
지자체들이 이토록 관광에 목을 매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지역 소멸 위기 극복'과 '경제 활성화'다. 하지만 대규모 개발을 통한 관광 활성화가 과연 주민들의 지갑을 채우고 지역을 살리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거대 자본이 유입되어 거둬들이는 수익은 대부분 외지로 빠져나가고, 소음과 환경 파괴, 치솟는 임대료 같은 부작용의 몫은 온전히 원주민과 지역 생태계가 떠안기 때문이다.
단순히 방문객 숫자를 늘리기 위해 지역의 생태적 보루를 허물고 인위적인 볼거리를 만드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다름없다. 진정한 의미의 지역 발전은 그곳에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이 존중받고, 그 땅의 자연과 역사가 온전히 보존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소비'하는 관광에서 '공존'하는 연대로
이제는 멈춰 서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우리는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영혼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방의 진정한 경쟁력은 대도시의 화려함을 흉내 내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맑은 자연, 오랜 세월을 품은 역사적 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들과의 공존에 있다. 관광객을 단순히 '돈을 쓰고 가는 소비자'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지역의 가치를 존중하고 함께 지켜나가는 '연대자'로 맞이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하다.
개발의 광풍 속에서 우리가 끝내 지켜내야 할 자존심이 무엇인지, 지자체와 우리 사회 모두가 깊이 과오를 돌아보고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당장의 이익과 바꾼 지역의 영혼은, 한 번 잃어버리면 결코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에서는 계곡 아래를 바라다 보려면 목숨 걸어야 한다. 데크도, 잔도도, 난간, 케이블카도 없다. 그래서 국립공원이고, 사람들은 거기를 계속 찾아간다. 땀흘려 오르고 목숨을 걸 수 있다면 그 때 보여주자. 국립공원의 자존심이 바로 그것이다.
<정읍집강소> 26.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