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집강소( 井邑執綱所)
Home

폐정개혁안의 현대적 의미

130여 년 전, 이 땅의 민초들이 외쳤던 폐정개혁안 12개조는 단순한 저항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당시 농민군이 꿈꿨던 평등하고 공정한 세상은 지금 우리 지방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정책들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12개 조항 속에 담긴 민주적 가치를 하나씩 짚어봅니다.

1. 관과 민의 벽을 허무는 '협치(Governance)'

원문: 도인과 정부 사이의 원한을 씻고 서정에 협력한다. 과거의 갈등을 넘어 행정에 협력하겠다는 의지는 현대의 민관 협치와 맥을 같이 합니다. 이는 오늘날 주민참여예산제민관협력 거버넌스처럼 시민이 정책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어 지역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2. 투명하고 청렴한 '공직 사회'

원문: 탐관오리는 엄벌에 처한다. 부패한 관리에 대한 엄징은 현재의 공직자 윤리 강화청렴도 평가로 이어집니다. 지방의회의 행정사무감사와 시민들이 직접 감시하는 시민 감사관 제도는 깨끗한 지방 행정을 지키는 현대판 파수꾼입니다.

3. 갑질 없는 '공정 경제'

원문: 횡포한 부호들을 엄징한다. 부당한 권력으로 부를 축적한 세력에 대한 경고는 현대의 경제 정의 실현과 연결됩니다. 지역 내 불공정 거래를 감시하고 지역 상생 협력 조례를 통해 중소상공인을 보호하는 정책이 그 현대적 실천입니다.

4. 특권 없는 '투명 행정'

원문: 불량한 유림과 양반들을 징벌한다. 기득권층의 부조리를 척결하고자 했던 의지는 행정의 투명성 확보로 이어집니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정보공개제도는 특정 세력이 정보를 독점하여 사익을 취하는 것을 방지하는 핵심 장치입니다.

5. 인권이 존중받는 '보편적 복지'

원문: 노비 문서를 소각한다. 가장 근본적인 신분 해방의 외침은 현대의 보편적 인권 보호로 계승되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 제정하는 인권 증진 조례와 소외된 이웃을 보듬는 복지 정책은 모든 시민의 존엄성을 지키는 현대판 노비 문서 소각입니다.

6. 차별 없는 '포용 사회'

원문: 칠반천인(七般賤人)의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의 평량갓(平凉笠)을 벗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철폐는 현대의 다문화, 장애인 인식 개선 정책으로 나타납니다.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고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포용적 행정의 시초라 할 수 있습니다.

7. 개인의 자유와 '성평등'

원문: 청춘과부의 개가를 허용한다. 여성의 재혼을 허용하라는 요구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개인의 자유와 권리 주장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양성평등 조례와 여성의 사회 참여 지원 등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환경 조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8. 공정한 '조세 정의'

원문: 무명잡세는 일체 폐지한다. 근거 없는 세금을 없애라는 외침은 합리적인 지방 세제 구축의 기반입니다. 주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세수 관리와 세부담 완화 정책은 지방 행정의 신뢰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9. 실력 중심의 '인사 혁신'

원문: 관리 채용 시 지벌(地閥)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한다. 가문이 아닌 실력으로 인재를 뽑으라는 요구는 현대의 공정 채용과 맞닿아 있습니다. 학벌이나 배경을 배제한 블라인드 채용과 지역의 역량 있는 인재를 발탁하는 시스템은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됩니다.

10. 자주적인 '지역 주권'

원문: 왜와 통하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 자주성을 수호하려는 의지는 현대 지방자치에서 지역 자산화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지역의 이권이 외부 세력에 의해 휘둘리지 않도록 지키고, 지역 내에서 부가 선순환되는 경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중요한 자치 과제입니다.

11. 서민의 '경제적 재기' 지원

원문: 공사채를 막론하고 기왕의 것은 무효로 한다. 과도한 부채 탕감 요구는 현대의 금융 복지 서비스와 연결됩니다. 고리채로 고통받는 서민과 소상공인을 위한 금융 상담 센터 운영 및 채무 조정 지원은 지역 공동체를 붕괴로부터 지키는 안전망입니다.

12. 만물이 함께 누리는 '공유 자산'

원문: 토지는 평균으로 나누어 경작하게 한다. 토지 분배의 정신은 이제 모든 생명과의 ‘공간 공유’로 진화합니다. 정읍의 산천과 동진강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 수달, 담비 같은 ‘말 없는 시민’들과 함께 누리는 생태적 공유 자산입니다. 개발을 명분으로 서식지를 파괴하는 행위는 21세기형 토지 약탈입니다. 땅을 소유가 아닌 공존의 터전으로 되돌려, 인간과 자연의 생존권이 평등한 생태 주권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맺음말 폐정개혁안 12개조는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평등, 공정, 그리고 참여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지방자치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입니다. 130년 전 농민군이 꿈꿨던 세상이 지금 우리 곁의 지방자치라는 이름으로 더욱 풍성하게 꽃피우길 기대해 봅니다.
不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