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사업의 모순과 시비(市費)로 닦는 아스팔트 길… 이제는 숲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요즘 지자체마다 산림청 예산을 확보해 진행하는 ‘무장애’와 ‘치유’ 사업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장애인과 노약자도 자연을 누려야 한다는 명분은 참으로 고결합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행정의 모순을 마주하게 됩니다. 숲을 가꾸고 보존해야 할 산림청의 사업이, 역설적으로 산의 심장을 파헤치는 거대 토목 공사의 명분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민의 혈세인 시비(市費)를 들여 산속에 차로를 깔아주는 행태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우리 시민들이 낸 세금이 정작 우리가 사랑하는 산의 허리를 끊고 아스팔트를 들이붓는 '파괴의 비용'으로 쓰이고 있는 셈입니다.
최근 우리 지역에서 논의되는 사업 예산만 해도 약 400억 원에 달합니다. 아양산 목조 전망대(약 130억 원)과 국립정읍숲체원(약 270억 원) 등 거대한 인공 구조물들이 산의 능선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산의 허리를 끊고 옹벽을 세우는 것이 진정 시민을 위한 길인지, 아니면 예산 소진을 위한 ‘사업을 위한 사업’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산림청 사업의 모순: ‘치유’라는 이름의 파괴
산림청의 ‘무장애 탐방로’나 ‘치유의 숲’ 지침은 접근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지침이 산의 식생을 도려내는 ‘면죄부’로 돌변합니다. 교행을 위해 도로 폭이 8m는 되어야 한다는 행정의 논리는 산을 산이 아닌 ‘공사판’으로 전락시킵니다. 8m는 도심의 왕복 2차선 도로와 맞먹는 폭입니다. 산꼭대기까지 시비로 아스팔트를 깔고 대형 버스가 오가는 곳에서, 휠체어를 탄 어르신들이 뜨거운 지열을 견디며 걷는 것이 과연 산림청이 말하는 ‘복지, 치유’입니까. 모노레일로 어르신들을 산꼭대기로 모시는게 최선일까요? 그것은 자연 정복일 뿐, 결코 치유가 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발상을 전환해야 합니다. 산은 산답게 가만히 두어야 합니다. 젊을 때 땀 흘려 오르며 그 야생의 생명력을 온전히 보존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 산이 그대로 있어야할 이유입니다. 대신, 그 막대한 400억 원의 예산을 ‘도심 속 거대 평지 숲’을 만드는 데 쓰자고 간곡히 제안합니다.
건물이 아닌, ‘길을 잃을 만큼 큰 숲’을 선물합시다
뉴욕 센트럴 파크는 도시 한복판에 ‘길을 잃을 만큼 넓은 숲’을 비워두었기에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습니다. 400억 원이면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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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양산 전망대와 시설물 건립(약 130억 원) 대신 그 예산으로 평지의 땅을 사고 나무를 심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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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치유원 조성 비용(약 270억 원)을 산 중턱에 쏟아붓는 대신, 휠체어를 타고도 끝없이 거닐 수 있는 광활한 평지 생태 공원을 조성합시다.
그곳에 큰고니가 우아하게 내려앉는 넓은 습지를 만들고, 비오면 맹꽁이 울고, 원앙 가족이 깃드는 울창한 수변 숲을 가꿉시다. 밤이면 수달이 마음 놓고 자맥질하는 살아있는 물길을 터줍시다. 이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치유, 무장애 공간이며, 세금이 쓰여야 할 마땅한 곳입니다. 이러한 공간을 미래에 선물합시다.
행정의 오만을 멈추고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여주십시오
산의 팔다리를 다 잘라놓고 ‘치유’라고 강변하는 행정의 오만을 이제는 멈춰야 합니다. 400억 원이라는 돈은 산을 파괴하는 비용이 아니라,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고 시민들에게 진짜 숲을 돌려주는 마중물이 되어야 합니다.
개발은 이제 그만합시다. 산은 가만히 두고, 우리 아이들에게 ‘길을 잃어도 좋을 만큼 깊고 넓은 평지의 숲’을 물려줍시다. 그곳에서 큰고니와 수달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품격 있는 도시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정읍시는 내장산 자연휴양림 짓는다고 멀쩡히 자라던 나무 다 잘라냈습니다.
이제 건물을 짓지 말고, 숲을 만듭시다. 제발, 산은 그대로 둡시다.
<정읍집강소> 26.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