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집강소( 井邑執綱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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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400억 원의 상상력, 산의 눈물 대신 생명의 숲을 꿈꿉니다

산림청 사업의 모순을 넘어, 우리가 진짜 물려줘야 할 ‘무장애 치유’를 생각하며

요즘 우리 지역 곳곳에서 ‘무장애’와 ‘치유’라는 이름의 사업들이 들려옵니다. 장애인과 노약자도 자연을 누려야 한다는 그 따뜻한 명분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실행 방식을 들여다보면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집니다. 숲을 지켜야 할 산림청 사업의 지침이, 역설적으로 산을 파헤치는 거대 토목 공사의 명분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논의되는 아양산 목조전망대(약 130억 원)과 국립정읍숲체원(약 270억 원) 등 총 400억 원 규모의 사업들을 마주하며,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산의 허리를 8m 폭의 아스팔트로 두르고 옹벽을 세우는 것이 진정 우리가 바라는 치유입니까. 특히 시민의 소중한 혈세인 시비(市費)를 들여 산속에 차로를 깔아주는 행위는, 자연을 보호해야 할 우리의 의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징적인 모순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불가능해 보이는 상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4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산꼭대기에 쏟아붓는 대신, 우리 삶의 터전인 평지에 쏟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양산 전망대와 시설물 건립 예산(약 130억 원)을, 산 중턱에, 불필요한 전망대를 짓는 데 쓰는 대신, 도심 근처의 땅을 사고 나무를 심는 데 사용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국립정읍숲체원 조성 비용(약 270억 원)을 험한 산지에 쏟아붓는 대신, 누구나 유모차를 밀고 휠체어를 타고도 끝없이 거닐 수 있는 광활한 평지 생태 공원을 조성하는 데 쓴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길을 잃어도 좋을 만큼’ 거대한 숲을 우리 아이들에게

뉴욕 센트럴 파크가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은 화려한 건물 때문이 아닙니다. 도시 한복판에 ‘길을 잃을 만큼 넓은 숲’을 비워둔 그 위대한 결단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산 중턱의 인공 건축물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연의 깊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진짜 숲입니다.
그 숲에 큰고니가 우아하게 내려앉는 넓은 습지가 있고, 원앙 가족이 평화롭게 깃드는 수변 숲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밤이면 수달이 마음 놓고 자맥질하는 살아있는 물길이 도심 곁에 흐르는 풍경,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장애 치유’의 완성입니다. 400억 원이면 우리는 이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산은 산답게, 치유는 우리 곁에

젊을 때는 땀 흘려 산을 오르고, 나이가 들어서는 집 가까운 숲길에서 수달과 눈을 맞추는 삶. 산은 야생의 생명력 그대로 보존하고, 인간을 위한 치유 공간은 평지에 제대로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행정의 숫자에 갇히지 말고, 생명의 가치를 먼저 상상해 주십시오. 산의 팔다리를 잘라 도로를 내는 대신, 그 예산으로 생명이 숨 쉬는 거대한 숲을 만듭시다. 400억 원이라는 큰 돈이 산의 눈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축복이 되는 길을 함께 꿈꿔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읍시는 내장산 자연휴양림 짓는다고 멀쩡히 자라던 나무 다 잘라냈습니다. 이제 건물을 짓지 말고, 숲을 만듭시다. 제발, 산은 그대로 둡시다. 산 자체가 거대한 전망대인데, 경관만 버릴 전망대는 취소합시다. 숲체험은 건물이 아니라 숲에 들어가서 하는 겁니다.
<정읍집강소> 26.05.05